SHERLOCK RIGHT COLLABORATION
SHERLOCK RIGHT COLLABORATION
달새 리외 아미 아비얌 아인스 우주 파묘
합작 주최/편집 - 아비얌
free banner
John Watson X Sherlock Holmes
drawn by. 달새 (@goddalsae)
John Watson X Sherlock Holmes
drawn by. 리외 (@noidyllic)
Greg Lestrade X Sherlock Holmes
drawn by. 아미
" Knock "
Greg Lestrade X Sherlock Holmes
written by. 아비얌(@abijammm)
혀끝이 썼다. 까마득한 예전에 한 번 어린 딸애가 정원에서 뛰놀다가 손을 잘못 놀려 담장 넝쿨 가시에 손가락을 된통 찔린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되레 딸애보다 본인이 더 기겁해서 입으로 직접 피를 빨아내 주었던 것이 떠올랐다. 핏물이 퐁퐁 솟아나는 그 조막만한 검지를 입 안에 넣고 혹여 세균이라도 가시 독이라도 들어가지 않을까 해서 딸애가 살갗이 아프다고 할 때까지 몇 번이나 피를 빨아내고 퉤 뱉어내는 것을 반복했다. 후에는 풀 맛인지 피 맛인지 뭔지 입 안에 텁텁하고 쓴 맛이 잔뜩 배었었다. 혀끝이 썼다. 뜬금없이 까마득한 옛날 기억이 떠오르는 게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레스트라드는 시멘트 바닥에 침을 한 번 탁 뱉었다. 왠지 모르게 메말라버린 입 안에서 침은 많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뱉으나 마나였긴 했다. 어디선가 침 분비가 원활하지 않으면 건강이 좋지 않은 신호라고 한 걸 들은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확실히 최근 들어서 몸이 그다지 건강한 것 같지는 않은 기분이다. 하지만 우중충한 날씨 탓을 하기에는 영국의 날씨는 거의 일 년 내내 이 꼴이니 날씨에게 잘못을 씌울 순 없었다. 원래 그는 흰머리가 솟아나고 있을 지언즉 형사 짓을 계속 해먹을 수 있을 만큼 체력 하나는 건강한 편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래도 요즘, 묘하게, 기분이 침잠되고 정신이 이리저리 방황하는 것 같기는 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근래 이상한 것은 그 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를 포함하여 스코틀랜드 야드의 다른 이들 역시 하나같이 비슷한 징조를 보이곤 하는 게 사실이었다. 이제 와서 모르는 척 하는 것도 웃길 것이다. 그건 마치 전염병처럼 사람들 틈에서 흘러 다니는, 하지만 그 누구도 직접적으로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그런 주제였으며 그런 내용의 꿉꿉함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눈치를 보는 사람은 다름 아닌 레스트라드 그였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따지고 보면 셜록 홈즈의 인맥은 넓은 편이었다. 그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그는 온갖 사건 사고를 접하며 수많은 사람을 알아온 것이 분명하다. 그들과 친밀한 관계(셜록 홈즈와 친밀한 관계라니, 프라이데이 나잇 프로젝트에 나올 만큼 웃긴 주제라고 해도 믿을 법 하다)를 쌓았을 리는 만무하지만 적어도 길에서 마주치면 상대방으로부터 예전의 일에 대한 감사 인사 또는 주먹질을 받을 만한 사람이 수없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관심을 갖는 수많은 팬들도 배제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셜록 홈즈를 향한 사람들의 일방적인 관심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레스트라드는 그를 오 년간 알아왔고, 아마 그의 주변 사람들 중에서 셜록 홈즈를 그 정도 기간 동안 알아온 사람으로는 유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오 년이라니. 아니, 이제는 육 년째인가 보다. 그는 셜록을 참으로도 지긋지긋하게 오래 알아왔다. 아내와 이혼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된 셜록 홈즈는 마침 그 떄 당시 맡고 있었던 사건이 도무지 풀리지를 않아 머리카락을 쥐어뜯던 레스트라드 그에게 있어서 하늘에서 보내 준 구원줄과도 같았다. 비록 그 구원줄이 자신에게 '그렇지 않아도 곧 탈모가 올 머리를 왜 일부러 더 쥐어 뜯냐'며 진심 어린 악담을 퍼부었지만 적어도 직장을 잃거나 청장에게 잔소리 얻어먹을 일은 무마해 주었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었다. 셜록은 그 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셜록 홈즈였으며, 그가 아는 한 거의 단 한 치도 변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상한 기분이었다. 모든 사람이 물 흘러가듯 평이한 삶을 살아가는 와중 셜록 홈즈 그는 하나의 동떨어져 나간 개체처럼 시간 사이에 멈춘 듯 그렇게,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레스트라드는 그런 그를 향해 몇 몇의 단편적이고 개관적인 판단만 내릴 수 있었다. 'Good' 역시 셜록 홈즈를 향한 그의 몇 안되는 형용사 중 하나였고 말이다.
레스트라드는 담배를 빼어 물었다. 딴 생각을 하는 것과는 별개로, 담배 끝에다가 라이터를 켜며 신중히 주변을 살피는 것도 잊지 않는다. 평일의 이른 오후 시간이라 그런지 역 근방의 골목길은 한산한 편이었다. 인이어 너머에서 들려오는 샐리의 초조한 목소리가 상황 보고를 했고 그 말에 차분히 응수하며 레스트라드는 마치 그 곳에서 데이트 상대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담배를 태웠다. 샐리는 지금쯤 건너편 골목에서 눈에 불을 켠 채 상대방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을 터였다. 샐리 도노반, 아마 그녀가 레스트라드의 눈치를 가장 많이 보는 사람들 중 하나일 것이다. 눈치, 를 본다는 것은 그녀가 시시때때로 그의 반응을 신중히 살핀다는 말이겠지만 우선은 그녀 본인부터 신중히 행동하기에는 어려운 것이, 요새 들어 그녀는 굉장히 침착하지 못했기 때문에 레스트라드는 되레 그가 그녀를 신경 써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간혹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그에게 그 만큼의 여유는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를 비롯한 앤더슨과 같은 다른 몇 사람들은 그... 사건, 이후, 강박적인 모습을 보이곤 했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는 레스트라드가 오히려 더 신경이 곤두설 정도였다. 뭐,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닌게, 아무리 고약한 성미를 가진 그 누구라도 살인마가 되는 듯한 기분을 좋아할 리가 없지 않은가. 비난, 매도, 낙하, 죽음.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는 키워드들이 뭉쳐 휘몰아치며 그들에게 눅눅하고 질척한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불어넣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샐리를 포함한 그들은 불안해했고, 괴로워했으며,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눈치. 어째서 그들이 그의 눈치를 본다고 묻는다면, 레스트라드 그가 경찰청 내에서 셜록 홈즈를 가장 오래 알아 온 사람이었으며, 또한 경찰청 내에서 거의 유일하다시피 셜록 홈즈를 괴물이라 부르지 않았던 사람이어서다.
셜록 홈즈가 사라진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으며 또한 바뀌지 않았다. 매스컴은 라이헨바흐의 영웅의 처참하고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떠들었고, 한때 언제 그를 몰아세웠냐는 듯이 영웅의 죽음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셜록 홈즈를 두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그 반대의 사람들이 라디오, 티비, 신문, 길거리에서 쏟아져 나왔으며 스코틀랜드 야드의 사람들은 간혹 그들을 보면 살인마를 보는 듯이 험악한 눈초리를 주곤 하는 셜록의 지지자들을 견뎌내어야 했다. 레스트라드는 다시 한 번 자신이 그저 평범하고 힘없는 월급쟁이에 이혼남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상기했다. 그는 그의 선택으로 인해 스코틀랜드 야드의 경위로써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 나간 아내와 딸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고 그의 추리력과 사건 해결능력이 순식간에 빛을 발하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셜록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왔으나 더 이상의 '조언'은 어디에도 없었으며 콜드케이스가 늘어가고 사건 해결이 질질 늘어질수록 레스트라드는 이상하리만치 그의 자리가 좁혀지는 것을 느꼈다. 사실 이상할 것도 없는데 말이다. 원래 처음부터 이랬어야 했던 것이었는데 이질적이라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 본인이나 그런 그를 신경 쓰는 동료들이나,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동시에 그렇지 않은 애매한 기분이었다. 레스트라드는 본인이 굉장히 현실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들어 어중간하게 붕 떠 현실성 없는 침잠을 겪고 있는 걸 보면 별로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라 생각했다.
누군가의 부재가 어떠한 결과를 미칠지는 레스트라드 그 역시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담배를 태워서 그런지 입안이 아까 전보다 더 텁텁해진 것 같았다. 맛없이 쓰기만 한 약을 먹은 것처럼 떫고 쓴 입 안에서 혀를 몇 번 굴리다가 그는 곧 있을 딸애의 생일을 무심코 떠올렸다. 필터까지 타들어간 담배를 떨어트리고 구두 굽으로 밟아 지지는데 바지 주머니에 들어있던 핸드폰이 진동했다. 작전 수행 시간이 근접한데 누가 전화를 거는 건지 그렇지 않아도 곤두서 있던 신경에 은근히 짜증이 났다. 아직도 채 익숙해지지 못한 신형 핸드폰의 액정에는 발신자 표시 제한이 걸린 번호가 떠올랐고 그것을 잠시 쳐다보던 그는 끊임없이 진동을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
[바쁠 때 전화한 건 아닌가 모르겠군요.] 상대방의 목소리는 익숙하지 않은 것이어서 레스트라드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가 누구냐고 되물었다. 점잖은 영국식 발음을 가진 남자의 목소리는 설명의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단지 귀찮았던 것인지 그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사실 용의자는 이미 뒷문으로 빠져나와 당신 쪽으로 향하고 있는데 도노반 경사가 눈치를 채지 못한 모양입니다. 당신의 다섯 시 방향에서 20미터 떨어져 있어요.] "지금 대체 뭐라는..."
레스트라드가 그 뒤로 채 말을 잇기도 전에 그의 인이어에서 도노반의 외침이 들려왔고 동시에 골목길의 안쪽에서 쾅! 하며 요란하게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 후에는 모두 자연스럽고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레스트라드는 본능적으로 허리춤의 총을 뽑으며 골목길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자 손에 총을 든 채로 달려 나오던 용의자가 레스트라드를 발견한 후 총을 겨눴고 그 후에는 두 발의 총성이 울림과 동시에 모든 일이 정리되었다. 땅바닥에 엎어진 이제 시체가 되었을지 모르는 용의자를 보며 숨을 고르는 그의 뒤에서 도노반을 포함한 잠복해 있던 경찰들이 달려와 시신을 수습하고 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근처에서 용의자를 감시하기로 되어 있던 도노반이 다가와 당혹스러운 얼굴로 사과해 왔다. 죄송해요, 설마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도망갈 줄은... 레스트라드는 됐다는 듯이 손을 휘저어 보였고 그걸로 그녀는 입을 다문 후 현장 수습에 동참했다. 비록 안타깝게도 용의자는 죽어버렸으나 한동안 계획하던 작전이 끝나 긴장이 풀려서인지 순식간에 피로가 몰려오는 기분이었다. 갑작스럽게 들린 총성과 경찰들의 모습에 기웃거리는 행인들을 쫓는 무리에서 빠져나온 레스트라드는 권총을 홀스터에 꽂아 넣다가, 반대 손에 들린 핸드폰을 기억해내고, 주변을 살피며 핸드폰을 귓가에 가져갔다.
[차를 보냈으니 타고 오시죠.] 그 말만 남긴 채 끊겨버린 전화를 내려다보며 레스트라드는 굉장히 일방적인 남자의 언사에 인상을 쓰다가 시선을 돌렸다. 검은 아우디가 부드럽게 찻길에 서고 그 뒷좌석에서 내린 정장을 차려입은 여자가 레스트라드 그를 향해 웃어 보였다. 굉장히 미심쩍었다. 레스트라드는 고개를 뒤로 꺾어 경찰들이 테이프를 두르고 있는 현장을 보았다. 미동 없이 시멘트 위에 엎드린 용의자의 몸뚱이 밑에서부터 붉은 것이 스믈스믈 흘러나오고 있다. 뜬금없이 셜록 홈즈가 떠올라서 그는 고개를 털어 버리고 의심스러운 검은 차를 향해 다가갔다. 이런 의심스러운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레스트라드가 마이크로프트 홈즈를 만나게 된 것은 한 시간도 더 지나서의 일이었다.
***
런던의 날씨와 카디프의 날씨는 엇비슷한 편이지만 카디프가 훨씬 더 질이 나쁘다. 거센 바닷바람에 눅눅한 공기와 더불어 비까지 자주 내리는 곳이라 카디프에 올 때마다 마치 우울한 여자의 눈물이 온 몸에 퍼부어지는 듯 기분 나쁘도록 축축한 느낌이 들곤 했다. 특히 지금 이 계절에는 비가 더욱 잦은 편이라고, 카디프에 살아본 적도 없는 그 역시 바삭하게 알고 있을 정도로, 이 동네의 날씨는 유명하다. 그는 카디프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어느 곳에서 우산을 든 채로 눈앞에 버티고 선 현관문을 보다가 시선을 위로 들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에 우중충하고 눈에 띄지 않는 아파트 형식의 건물은 주변의 다른 건물들로부터 드리워진 그림자에 가려져 있어서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은 그 건물의 존재를 모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코트 주머니에 찔러 넣은 손 안에서 만지작거리는 종이 쪼가리는 그가 얼마나 접었다 폈다 하며 만져 대었는지 너덜하게 헤어져 있었고 그 위에 쓰여있는 내용물은 토씨 하나도 빼먹지 않고 외우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스트라드는 그 종이를 꺼내 다시 한 번 읽었다. 단정한 필체로 적혀 있는 집 주소. 그는 문 옆에 박힌 번지수를 또 한 번 확인했다. 이곳이 확실하다. 맞게 찾아왔나보다. 그런데 몇 시간 동안이나 쉬지도 않고 달려온 보람도 없이, 막상 손가락은 초인종을 누르지 못하고 있다. 멀뚱히 서있는 그에게 세지도 약하지도 않은 눅눅한 빗줄기가 검은 우산 위로 후두둑 쏟아졌다가 둥글게 떨어져 내리곤 했다.
그는 몇 번이고 손가락을 올렸다 내렸다 하길 반복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바로 인터폰에 연결되어 그의 호수로 연결되는 버즈가 울릴 텐데 그거 하나 섣불리 하지 못하는 자신이 참 꼴불견이다 싶었다. 막상 집 앞까지 오긴 했는데 이렇게 망설여지는 것을 보니 괜히 왔나 싶은 마음도 들었다. 마이크로프트 홈즈는 이 주소를 알고 있는 사람이 그 자신 한 명밖에 없었으며 그가 레스트라드와 공유하게 된 이상 두 명으로 늘어났다고 말했었다. 그 말에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셜록 홈즈의 가족이라는 작자가 이런 것을 가지고 쓸데 없이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정작 남자가 하는 말을 들을 때나 그에게 주소가 적힌 쪽지를 건네받을 때에는 몸속에서 온갖 감정들이 휘몰아쳐 욕지거리부터 나왔었는데, 그 후에 달리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카디프까지 단숨에 내려온 저였는데 처음의 그 호기는 어디로 가버린 건지 조금, 한심스럽다고 생각했다. 그 얼굴을 마주대고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생각해보면 되fp 입이 다물려 버린다. 분명 그 때, 죽은 것을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흰, 천에, 뒤덮여, 눈을 내려 감고. 셜록 홈즈는 그렇게, 잠든 것처럼. 그리고.
삐익---
길고 낡은 전자음을 내며 철컹, 문이 열렸다. 레스트라드는 한 손으로 우산을 든 채, 다른 손은 엉거주춤하게 버즈를 향한 채 홀로 열리는 문을 바라보았다. 그는 고개를 뒤로 젖혀 건물 위를 올려봤다. 빗물이 얼굴에 몇 방울 쏟아질 지언즉 건물에 듬성듬성 난 창문 너머로 고개를 빼어 내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 뒤 젖은 길거리를 지나가는 행인 한 둘만 간혹 있을 뿐이었다. 레스트라드는 우산을 탁 접은 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녹슬어가는 철골이 뼈다귀처럼 훤히 드러난 내부에 양쪽의 건물들에 가려져 햇볕이 들어오지 않아 눅눅한 복도는 물비린내가 났다. 엘리베이터조차 없는 건물의 계단을 하나하나 걸어 올라가며 레스트라드는 그가 이곳에 왜 있는 건지 수 번째로 생각했다. 과연 그가 여기에 찾아와서 달라지는 건 뭘까. 단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게 전부인가? 화가 나고, 웃음이 나고, 또 화가 나긴 했는데 정작 그 앞에 서게 된다면, 아마 그는. 레스트라드는 한 현관문 앞에서 멈춰 섰다. 바닥을 짚은 장우산에서 떨어져 나온 물이 바짓단을 적시고 있었지만 그는 한동안 그러고 섰다. 긴장이 심하면 공포와도 같은 떨림이 나온다고 하던가, 그는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속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비척거리고 있었다. 숨을 들이 쉬며, 그는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집 안의 공기는 서늘했다. 어쩌면 바깥의 공기보다도 더 온도가 낮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끼익,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서자 어딘지 메마르고 차가운 공기가 훅 끼쳐왔다. 작은 평수의 실내는 건물과 같이 낡고 여기저기 부식된 흔적이 역력했지만 깔끔했다. 낡아서 보풀이 온통 일어난 카페트나, 몇 십 년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을 것만 같은 오래 된 소파나 테이블 따위의 가구들도 모두 사람 손 하나 닿지 않은 듯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럽거나 하진 않았다. 창문 너머로 흐리게 들어오는 빛에 어둔 회색으로 밝혀진 집 안에는, 지독하게 아무 흔적도 없다. 그가 찾아온 누구와도 같이 조용하고, 고요해서. 마침 방 안에서 셜록 홈즈가 걸어 나오지 않았다면 아마 레스트라드는 빈 집에 잘못 들어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예상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도착해놓고 어지간히도 어물쩡거리며 벨을 안 누르더군. 셜록은 그렇게 말하며 레스트라드를 지나쳐 주방으로 들어가 덜그럭거렸다. 정돈되지 않은 검은 머리카락이며, 예전보다 더 마른 것 같은 호리호리한 몸은 병약해 보이고, 회색으로 보일 정도로 무기질적인 푸른 눈은 그를 향하는 적이 없다. 그는 등을 보인 채 특유의 단조로운 목소리로 떠들었다. 누군가가 찾아 올 거라 생각은 했지만 레스트라드 당신이 오다니 의외군, 아마 형이 설레발치며 말해 주었겠지. 사실 카디프에 올 생각은 없었는데 급하게 선택을 하다 보니 이곳에 오게 되어버렸어. 음침하고 조용한 곳이지. 딱 좋아, 아무런 소음도 없이 생각을 가다듬기엔 최적의 공간이지. 물론 미칠 듯이 지루해서 하루에 니코틴 패치를 몇 개씩이나 써버린다는 단점이 있지만... 오. 레스트라드. 몸을 뒤로 돌린 셜록은 그의 앞에 다가와 있는 레스트라드를 보며 입가를 올린 채 팔꿈치로 주방 선반에 기대었다. 여차하면 한 대 치려는 모양새로군. 레스트라드는 당연히 셜록을 한 대 치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얼굴을 마주하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고민하던 아까의 예상을 뒤엎고 그는 주먹부터 뻗어 나가려는 자신에게 놀랐다. 하지만 정말이지, 셜록 홈즈에게 천하의 개새끼라고 욕을 하며 아구를 날리고 싶었다. 그는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셜록의 예상에 부응해주는 대신, 한 손을 들어올려, 그보다 좀 더 시선이 높은 남자의 어깨를 짚었다. 말라서 뼈가 두드러지는 어깨를 힘주어 잡은 채 고개를 숙이고, 그는, 한숨처럼 숨을 뱉었다.
셜록 홈즈가 살아 있었다.
" The Only Miracle "
John Watson X Sherlock Holmes
written by. 아인스(@_Alpenglow)
"죽음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나?"
"뭐?"
"죽음 말이지."
존은 혼잣말하듯 나지막하게 물었다. 부엌에서 자신의 상식 범위를 벗어난-아주 한참이나-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셜록에 대한 질문이었다. 소파에 기대어 앉아있던 존은 고개를 빼꼼 돌려 셜록을 바라보았다. 셜록은 눈길도 주지 않고서 대답했다.
"심장박동과 뇌 기능이 정지하여 몸의 모든 활동이 중지되는, 소생이 불가능한 상태."
정확하고 논리정연하며 그 나름대로 성의 있는 대답. 허나 자신의 의도를 한참 벗어난 대답에 존은 다소 김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오, 셜록.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의학적 사실이 아니라 사건 그 자체의 의미였어. 자네 말마따나 심박이 멈추고 뭐...그래. 거기에 그것 외에 무슨 의미를 더 더할 수 있느냐 하는 거지. 응?"
셜록은 존의 어르는 듯한 어조에 손을 멈추고 우뚝 선 채로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대뜸 의중을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지는. 셜록은 잠시 말을 골랐다. 존은 셜록이 입을 열기를 차분하게 기다렸다.
"존. 자네가 누군가를 죽일 생각이라면 그건 그 나름대로 흥미롭겠지만-"
"아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지금?"
"...이 상황에서 도출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 적절한 결론이었는데..."
셜록은 흘긋 존의 눈치를 살폈다.
"틀린 모양이군."
"내가 자네 면전에 대고 총을 갈긴 건 사실이었지만.."
존의 씁쓸한 말이 흐려지자 잠시 적막이 흘렀다. 존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한숨인지 헛웃음인지 모를 김빠지는 소리를 냈다. 저 남자는 그토록 정상적인 범주에서의 사고가 힘든 것인지. 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서 말을 이었다.
"자네에게 살인 상담을 할 정도로 썩어 빠지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욕을 교묘하게 돌려서 하는 건가?"
"틀려."
존은 푸핫, 웃음을 터트렸다.
"어쨌든-죽는다는 사건이 자네에게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 오냐는 말이지."
"질문의 의도가 불분명한데. 그놈의 TV 좀 적당히 봐."
셜록이 혀를 차며 말했다. 존은 곧바로 말했다.
"그렇게 많은 죽음들을 면전에서 접하면서도 느끼는 게 전혀 없다고?"
".."
"나는 그저 약간 호기심이 들었던 것뿐이야.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일상적으로 접하는 자네의, 죽음에 대한 견해가."
정적이 흘렀다. 셜록은 잠시의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지루하지."
"오."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군."
셜록은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런 사건도, 시체와 수수께끼도 접하지 못하고 가만히 누운 채로 썩어 구더기에게 먹히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니 끔찍하기 그지없어."
"존재의 사라짐보다 더 이상 사건을 받을 수 없다는 게 더 끔찍하다,인가."
"명백하지."
존은 살짝 웃었다. 예상과 그리 멀지 않은 너무나도 '그'다운 답이었기 때문이리라.
"가능하다면, 존."
"응?"
"현재에 충실하도록 해."
셜록은 다시 눈길을 비커 안의 눈알에 고정하고서 말했다.
"이 번잡한 런던 어딘가에 존재할 또 다른 범죄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이 현재에 충실 하는 것만으로도-"
흐물흐물하게 뭉개져 있던 눈알이 완전히 녹아내렸다. 셜록은 어떤 약물인지 알아 볼 수 없는 걸쭉한 액체를 하수구에 쏟아내고서 말을 이었다.
"인생은 너무나도 짧아."
-"Goodbye, John."
어울리지 않은 작별인사-남자는 신음하며 눈을 떴다.
-묘비를 앞에 두고 존은 우뚝 섰다. 6개월 만이었다. 완전히 시들다 못해 썩어 비틀어진 꽃을 들어내고 존은 파릇한 새 백합을 살짝 놓아두었다. 막연한 그리움과 씁쓸함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존은 눈을 감았다.
딱히 세상의 시선이 거슬린다거나, 답지 않은 감성에 휩쓸려 발걸음이 뜸해진 것은 아니야. 사람들은 생각보다 빨리 잊었고, 나는 그리 감성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때문에 외적인 이유도, 내적인 이유도 아닌 단지 바쁘다는 핑계가 내 발목을 잡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지. 나는 진작에 다 큰 성인이었고 스스로를 부양할 의무가 있었으며 너의 존재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 의무를 철저하게 이행해야했다. 네 말마따나 현재에 충실하며 짧디 짧은 인생을 더 많은 것들로, 이왕이면 소중한 것들로 채워야 한다는 강박에 나는 시달렸다. 그래서 더욱 가능한 한 빨리 너의 공백을 뒤로하고 달라진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어. 애써 너의 묘석을 찾지 않도록 한 것도, 다가오는 여자를 밀어내지 않고 금세 사랑에 빠진 것도, 모두 나의 생존을 위한 발악이자 스스로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였다.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믿었으며 그것이 사실이었다. 너는 죽었고 나는 살았으니,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현재에 전력을 다하고자 노력한다고-그렇게, 나는 지난 6개월 동안 비겁하고 그럴듯한 핑계로 살아왔다.
내 너에 대한 마음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은 끔찍하게도 베이커가에 돌아가 그의 죽음을 끝내는 실감한 그 때. 삶의 방향성을 잃고 비틀거리던 나는 문득 기억해 낸 것이다. 너의 죽고 싶지 않다는 그 말을.
너의 행동을 비난하면서도 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던 나는 그 말을 떠올리자마자 치명적인 통증에 가슴을 움켜잡았다. 인생은 너무 짧다고. 죽고 싶지 않다고. 그런 네가, 나로 인해서. 스스로. 나의 죄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네게 몇 번이고 속죄하고 싶은 기분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새삼 절감했다. 그가 나에게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 그가 나를 얼마나 아꼈었는지. 사랑에 가까웠을 그 감정의 무게가 철근이 되어 너를 추락하도록 했다는 생각에 나는 머리를 조아렸다. 그제서야 나는 자각한 것이다. 일상에 녹아있던 소중한 것에 대한 나의 숨겨져 있던 감정을.
감았던 눈을 떴다.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매끈하게 검은 빛을 자랑하는 묘비를 쓰다듬듯 천천히 만져보고는 존은 조용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야, 셜록. 오늘은"
결코 말하지 못할. 최초이자 마지막일, 더 이상은 닿지 않을 고백.
"부탁을...하러 왔어."
단 하나의 기적, 사랑한다는.
그 말을 전할 수 있도록.
"Don't...be,"
-dead.
" 셋을 위한 데이트 "
Jim Moriarty X Sherlock Holmes
written by. 우주(@0SinB0)
내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존은 허공에 떠오른 문장을 애써 무시하고 뒤로 돌아섰다. 그는 몇 십분 째 어두운 방 안을 숨 죽여 배회하고 있었다. 건너편에는 셜록이 있었다. 아마 그는 존이 두 시간 전, 병원의 갑작스러운 호출 때문에 외출한 걸로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 이전에도 비슷한 이유로 나가서 외박하고 돌아온 전적이 있으니 갑자기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서 큰 의심은 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다음날 아침 셜록이 존의 셔츠에서 베이커 가의 벽면에서만 묻을 수 있는 콘크리트 가루 같은 걸 발견하지만 않는다면, 완벽 범죄로 끝낼 수도 있어 보였다. 존은 셔츠를 잠시 체크하고, 자신의 앞에 마주한 벽면을 위 아래로 훑어보았다. 벽은 예전, 셜록이 심심하다는 이유로 총으로 낸 구멍들이 어수선하게 박혀있었다. 그 중 몇 개는 빛을 제대로 막지 못하고 그대로 투과하고 있었다. 존은 그 중 적당히 자신의 눈높이와 맞는 구멍에 얼굴을 바짝 붙였다. 그는 이전에 자신이 그 구멍들을 이런 방식으로 활용하게 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었다. 누군가를 엿본다는 행위 자체가 그에게는 다소 생경한 일이었다. 물론 혈기 넘치는 십대 때 이런 종류의 판타지를 상상해보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런 방식으로 이런 나이에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것도 그 대상이 셜록 이라니. 오, 신이시여.
밀려오는 탄식을 애써 뱃속 어딘가에 구겨 넣고, 존은 벽 건너편의 시야에 집중했다. 셜록은 탁자에 앉아있었다. 노트북을 만지고 있는 모양인지 희미하게 자판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존은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가 어느 정도 불법, 혹은 변태적 행위와 닮아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찝찝한 기분을 떨쳐버리기 위해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헝클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만둘 수도 없었다. 오늘 안에는 기필코 결정을 해야 했다. 존은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셜록의 뒷모습을 주시했다.
셜록, 그래. 모든 것이 셜록 때문이었다.
존이 캄캄한 방안에서 셜록을 엿보는 사정에 대해 설명하려면 2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존은 그 날, 집 근처의 마켓에서 튀긴 콩 통조림과 볶은 콩 통조림을 각각 양 손에 들고 저녁상에 올릴 최후의 통조림을 위한 심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심사는 별로 순탄치 못했다. 한개는 포장지가 왠지 너무 싸구려 같았고, 한개는 그다지 믿음직스럽지 못한 곳에서 만든 제품이었다. 튀긴 콩은 가끔 먹으면 맛있지만 자주 먹으면 금세 물려버렸다. 볶은 콩은 자주 먹기엔 좋았지만 너무 심심했다. 그런 식으로 확실한 승자 없이 박빙의 승부가 이어지고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다소 쓸모없이 흘러가고, 결국 마트를 한 바퀴 더 돌고 골라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아갈 즈음이었다. 쇼 윈도우 너머로 눈길을 잡아끄는 물건이 있었다. 몇 초간, 존은 그게 붉은 공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보니 그것은 커다란 꽃다발이었다. 눈이 시릴 정도로 새빨간 장미 꽃다발. 요즘에도 저런 걸 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군. 존은 조용히 미소 지으며 용기 있는 젊은이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굳었다.
“…셜록?”
존은 아주 잠시, 자신의 시력을 의심했다. 혹은 런던에 저런 머리카락과 저런 코트를 입는 사람이 한 둘 정도 더 있다고 해서 이상한 일은 아닐 거라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존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생각을 빠르게 철회했다. 적어도 런던 거리에서, 자신이 셜록과 착각 할 정도로 닮은 인물이 존재 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셜록은 꽃다발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세상에, 꽃이라니! 존은 자신도 모르게 들고 있던 콩 통조림을 두 개 다 카트에 던져 넣고 빠르게 계산대로 향했다. 셜록은 아직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존은 봉투에 물건들을 빠르게 던져 넣으며 셜록이 누군가에게 꽃을, 그것도 장미를 선물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건 마치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마이크로프트나, 펑크룩을 입은 허드슨 부인을 상상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절대로 일어날리 없는 일들을 상상 할 때의 아련한 느낌이. 그러나 적어도 그 중 하나는 오늘, 그의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존은 마켓을 나서며 자신이 여자 친구에게 사과하기 위해 꽃을 살 때 셜록이 했던 조언을 떠올렸다.
‘그 꽃은 안돼, 꽃말이 좋지 않아. 여자들은 꽃말에 예민하지. 연애를 오래 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앞으론 적어도 같은 장미라고 해서 다 같지는 않다는 걸 알아뒀으면 좋겠군.’
‘네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
‘누군가는 꽃으로도 메세지를 남기기 때문이지…귀찮게도.’
‘그래? …그러면 뭘 사야 하지?’
‘그냥 앞으론 빨간 장미만 사도록 해. 사랑, 정열, 여자들이 좋아하는 말은 다 들어있으니까. 오…유치하기 짝이 없군. 아, 자네에게 하는 말은 아니야.’
그렇다면 그건 누구에게 하는 말이었을까. 존은 마켓에서 나온 뒤로도 한 블록 정도 떨어진 거리를 유지하며 셜록의 뒤를 쫓고 있었다. 존은 자신이 그런 것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점이 묘하게 불쾌하게 느껴졌다. 어찌 됐건 그는 룸메이트자 친구였으니까. 굳이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옆으로 다가설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셜록과 존의 사이를 무언가가 빽빽하게 가로막고 있었다. 마치 다른 이를 보는듯한, 낯선 이질감이. 존이 주머니속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그에게 문자를 해도 좋은지에 대해 고민하는 사이, 셜록이 시계를 확인하곤 조금 더 빨리 걷기 시작했다. 존은 자꾸만 봉투 밖으로 탈출하려는 샐러리를 대충 수습하며 그 뒤를 바짝 쫓았다.
“…허.”
존은 셜록이 방금 전 들어간 곳이 영화관, 그것도 일반적인 사람들이 즐겨 이용하는 보통의 영화관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곤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치켜떴다. 영화관의 외벽을 절반쯤 가린 현수막에는 최근 한창 인기리에 상영 중인 로맨스 영화의 포스터가 큼직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설마. 저걸 보러 들어갔을 리가. 존은 반쯤 넋이 나간채로 매표소 곧장 달려가 앞 사람이 끊은 것과 같은 표를 달라고 요구했다. 매표소 직원의 의심스러운 눈길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것은 꽤나 신경을 긁는 일이었지만, 다행히도 자리가 있었던 모양인지 존은 어렵지 않게 같은 표를 받아낼 수 있었다. 존은 자신이 받아든 티켓에 적힌 ‘잊지 못할 발렌타인’ 이란 활자를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한참동안 매만졌다. 자신이 알고 있는 셜록 이라면 아마 이런 종류의 영화는 평생 동안 보지 않아도 전혀 지장이 없을 거라 주장 했을 터였다. 그게 아니라면 아마 ‘돈을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예의바르게 버릴 수 있는 방법들 중 하나’라며 비아냥거리거나.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든, 셜록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그의 일상의 범주에서 한참은 벗어나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존은 셜록이 스크린을 제법 성실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에 대해 어쩌면 도플갱어가 정말로 실존하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외에는 더 이상 그 무엇도 생각 할 수가 없었다. 영화 내용은 정말로 판에 박힌 듯 지루한 로맨스였다. 여자가 있고, 남자가 있고, 어떤 알 수 없는 기막힌 우연 때문에 두 남녀가 갑자기 서로에게 끌려 입술을 부딪힐까 말까 두 시간 내내 고민하는 스토리의. 물론 그 남녀가 정말로 키스를 했는지 안했는지는 존에게 있어 별로 상관없는 문제였다. 적어도 영화의 내용보단 셜록이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 쪽이 더 흥미진진해 보였다. 오, 셜록. 네가 잠시 자러 들어 온 게 아니라면 대체 왜 이런 곳에 들어와 있는 거지? 존은 도무지 스크린에 집중하지 못하고 시시때때로 고개를 길게 빼어 셜록의 정수리를 살피곤 했다. 셜록은 그때마다 미동도 없이 스크린을 주시하고 있었다. 결국 옆에 앉은 여자가 존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흘긋거리기며 동행과 귓속말을 나눴다. 존은 불쾌하고 불편한 종류의 모든 감정들을 얼굴에 담아 화면을 노려봤다. 그만, 그만해요! 스크린 속의 여배우는 어느새 펑펑 울며 간헐적으로 돌고래 소리를 내고 있었다. 존은 그 틈을 타 조용히 자리를 떴다.
영화관을 겨우 벗어난 존은 재빠르게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작성했다.
[어디야? 언제 돌아오는지 좀 알려줘, 저녁 차릴 거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답신이 도착했다.
[저녁은 밖에서 먹을것 같군.]
존은 디스플레이로 떠오른 글자들을 바라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셜록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대신, 핵심적인 질문에 답을 하지 않는 그만의 방식. 그것에 자신이 얼마나 당했었는지. 존은 지난 기억들을 회상하며 쓰게 웃었다. 이상하게도 그 사실은 그에게 실망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존은 벽에 기대 적어도 오늘 저녁메뉴론 쓸 수 없게 된 통조림들의 표면을 쓰다듬으며 천천히 가라앉았다. 어째서 자신이 이렇게까지 예민하게 굴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셜록이 밖에서 무엇을 하든 간에 그건 오롯이 그의 자유이자 프라이버시였다. 만약 정반대의 상황이었다면, 존은 분명 셜록이 참다못해 귀를 막는 시늉을 할 때까지 길길이 날뛰었을 게 분명했다. 셜록, 나는 네 물건이 아니야! 존은 손으로 이마를 쓸어 넘기며 한심스럽다는 듯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그래, 셜록. 너 또한 내 물건이 아니지.”
그렇게 존이 다소 혼란스러운 감정들을 대강이나마 갈무리 해 갈 즈음, 극장 안쪽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영화가 끝난 모양이었다. 존은 어쩐지 못된 짓을 하다 들킨 기분으로 재빠르게 벽 뒤로 숨어 팜플렛으로 얼굴을 가렸다. 팜플렛 한 가득 인쇄된 여배우의 얼굴이 존의 얼굴 위로 덮혀 조금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었다. 그를 발견하고 키득거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존은 그 행렬이 어서 끝나기만을 바라며 벽에 사진처럼 꼿꼿하게 박혀있었다.
존이 겨우 여배우의 얼굴에서 자신의 얼굴을 떼어놓을 수 있었을 때, 셜록은 누군가와 활발히 이야기 하며 통로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존은 그 사실에 솔직하게 놀라워했다. 입을 다무는 걸 깜빡할 정도로. 누군지는 몰라도 그 사람은 셜록을 저런 공간에 앉힐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존이 그들을 계속 쫓아야 하는 이유는 명백해보였다. -비록 그게 상당부분 자기합리화일지라도- 셜록 옆에 선 사내는 머리카락을 말끔하게 뒤로 넘기고, 챙이 좁은 중절모를 쓰고 있었다. 존은 방금 전까지도 좋은 가면 역할을 해주었던 영화 팜플렛을 다시 얼굴에 바짝 붙인 채 셜록의 뒤에서 느릿하게 걸었다. 다행히 다른 영화관에서 나오는 관객들이 꽤 있어 존의 몸은 자연스레 그들의 틈 사이로 매끄럽게 녹아들었다.
중절모의 사내는 문제의 꽃다발을 쥐고 있었다. 존은 이마를 살짝 찡그렸다가, 이내 다시 팜플렛 안으로 고개를 숙이고는 조용히 납득했다. 셜록의 데이트 상대가 남자인 것은 이제 와서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었다. 그보다는 그 사람이 대체 누구기에 셜록을 이렇게 만들었는지가 궁금할 뿐이었다. 존은 셜록과 중절모의 사내가 코너를 도는 틈을 타 위험할 정도로 가까이 다가붙었다. 존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그들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입을 맞추고 있었다. 존은 소리 없이 팔과 다리를 푸드덕 거리며 다시 벽 뒤로 물러섰다. 얼마간의 침묵 뒤에 셜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맞았어. 약속대로 밥은 내가 사지.”
-그리고 존의 심장은 그대로 몸 밖으로 튕겨져 나가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존은 그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아니, 사실은 그 날 이후로 꿈에서도 잊어본 적이 없는 목소리였다. 존은 팜플렛이 어느새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발소리가 상당히 멀어지고 나서야, 존은 가까스로 두개의 단어를 발음할 수 있었다.
“…짐 모리아티.”
오, 셜록, 이 개 같은 새끼야. 넌 그 자식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꿈에서라도 만나서는 안돼.
존의 집요한 추격전은 시내의 한 레스토랑 앞에서 멈췄다. 셜록은 모리아티와 함께 스며들듯 레스토랑 안쪽으로 사라졌고, 존은 레스토랑 건너편의 인도에서 그 광경을 멀거니 지켜보고 있었다. 그제서야 모든 감각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얄팍한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혀 끝에 쓰게 달라붙어왔다. 존은 바짝 마른 입술을 핥으며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누군가 나타나 자신이 이러고 있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다고 말한다면, 당장이라도 목을 매고 싶어질 것만 같았다. 세상에, 존 왓슨. 너는 이런 인간이 아니었잖아. 존은 차갑게 메마른 손바닥으로 양 볼을 꾹꾹 누르며 눈을 감았다. 당장이라도 레스토랑 안으로 뛰쳐 들어가 대체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냐고 묻고 싶은 충동이 온몸을 두들겨대고 있었다. 존은 희미해져가는 이성을 억지로 붙들어두기 위해 눈을 눌러 감았다. 영원처럼 긴 시간이었다. 얼마 뒤, 눈을 뜬 존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터덜터덜 걸어 베이커가로 돌아갔다. 그 날 저녁 식탁에는 두개의 통조림이 모두 올라왔다.
그 뒤로도 얼마간의 시간이 있었다. 콩을 먹어치우는 존과 벽 뒤에 숨어 셜록을 훔쳐보는 존 사이에는, 정확히 2주 하고도 4일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그동안 존이 전혀 노력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존은 제 나름의 방식대로 꽤나 참을성 있게 셜록의 설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존은 그것이 절대로 강제적인 형태를 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사치스러운 희망을 끝내 버리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 외의 많은 바람과 복잡한 상념들이 합쳐져서, 존의 말은 주로 원치 않게도 데이트 신청을 기다리는 소녀마냥 핵심의 근처를 빙글빙글 돌아버렸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있지, 셜록…네가 그날의 일을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어. 물론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니겠지. 내 말은, 모리아티…그래, 그 일들 말이야. 음, 계속해서 묻는 것 같아 미안한데, 어떻게 생각해? 그리고 보통 그런 대화의 끝은 애석하게도 셜록의 무심한 한마디로 끝나곤 했다.
“네가 신경 쓸 건 아냐.”
신경 쓸 일이 아니기는, 개새끼. 존은 몇 번인가 그 문장을 블로그에 적었다. 물론 등록하는 일은 없었지만. 존은 얼굴을 쥐어짜듯이 손바닥으로 매만지다 구글에 리처드 브룩을 적었다. 리처드 브룩. 모리아티.
몇 달 전의 일이었다. 그 남자가 셜록을 궁지로 몰아넣고, 셜록을 세기의 사기꾼으로 만들고, 모든 게 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던 시점에 갑자기 순순히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고 감옥으로 들어간 일이. 존은 그 날의 모든 것을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뺨에 스치던 바람의 습기나 당장이라도 타버릴 것 같던 기도의 느낌까지도. 그러나 셜록의 얼굴이 어땠는지, 셜록의 어투가 어땠는지, 평소와 어떤 부분이 어떻게 달랐는지는 이상하게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만 같았다. 그러나 존은 자신이 왜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셜록은 그 날도 평소와 전혀 다른 점이 없었을 것이었다. 존의 기억의 끝자락에서, 건물 계단을 내려온 셜록은 존을 발견하곤 살짝 눈썹을 찡그리고, 잠깐이나마 웃었던 것 같다. 셜록, 괜찮아? 저 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존을 지나치며 셜록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었다.
시작이군.
시작이라니, 무슨 시작을 말하는 거지. 존은 그때까지만 해도 그 시작이 셜록이 이겼음을, 모든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실날같은 가능성을 붙잡아 다시 무대 위로 돌아왔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모든 게 불분명하게 보였다. 시작이라고? 망할, 시작은 무슨. 존은 구글 페이지를 뚫어져라 노려보며 캔맥주에 남은 한 모금을 마저 입으로 털어 넣었다. 컴퓨터 화면에는 리처드 브룩이 수감 다음날 마치 증발한듯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는 몇 달 전의 기사들이 푸른 글씨로 빽빽하게 올라와 있었다.
존은 당장이라도 레스트레이드 경감에게, 혹은 그것이 영 여의치 않다면 마이크로프트에게라도 연락해서 그를 다시 감방 안으로 밀어 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셜록과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를 잡아넣기 에는 어쩐지 못내 찝찝한 구석이 있었다. 셜록을 배신 하는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었다. 자기 전에 단단히 묶은 결심은 아침이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존은 핸드폰을 백 번도 더 들었다가, 이내 짜증을 내며 핸드폰을 던져버리곤 했다. 그리고 오 분이 지나면 다시 핸드폰을 주우러갔다. 존과 존의 핸드폰이 그런 격정의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셜록은 그 후로도 점심이나 저녁나절이면 어딘가로 사라졌다가 저녁을 밖에서 해결하고 오는 일이 잦았다. 존은 그 모든 것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셜록을 배신하는 일 역시 만만치 않게 마음에 들지 않는 일들 중 하나였다. 결국 존은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이 납득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리고 그 방식은 결국 존이 절대로 원치 않는 방향으로 수월하게 진행되는 중이었다. 존은 손가락에 침을 발라 벽에 난 구멍을 넓혀가며 이것은 결코 스토킹이나 함정이 아니라고 끊임없이 마음을 다잡아야만 했다. 존은 만약에라도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 셜록이 모리아티를 집에까지 끌어들인다면 그것 역시 셜록 또한 자신을 보다 은밀한 방식으로 배신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 뒤의 일은 조금 더 간단해보였다. 어디까지나 여기는 자신도 거주하는 공간이고, 갑자기 일이 취소되어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셜록(개새끼)과 모리아티(또 다른 개새끼)가 같이 있었다- 를 발견하는 건 좀 치사하지만 그런대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스타트를 끊기에 꽤 괜찮은 방법인 것 같았다. 물론 셜록이 모리아티를 집으로 불렀을 때의 이야기지만. 존은 한참동안 바깥의 소리에 귀 기울이다,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모리아티의 방문이었는지에 대해 갈등하고 있었다. 갈등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술술 흘렀다. 어쩌면 깜빡 잠들었을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1층에서 들리는 초인종 소리에 존이 화들짝 놀라 하마터면 배드 테이블 위에 올려 진 조명을 발로 걷어찰 뻔 했다는 것이었다.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존은 문이 굳게 잠긴 걸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벽으로 바짝 달라붙었다.
“자기, 나 왔어.”
존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찼다. 설마 내가 나가기만 기다린 건 아니겠지. 존은 모든 일이 마무리 된 후 기필코 셜록의 얼굴을 때리겠노라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건너편에서 존이 주먹을 한 번 더 눌러 쥐는 동안, 셜록은 모리아티를 곁눈질로 잠시 바라보곤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 노골적인 무시조차 개의치 않는다는 듯, 모리아티는 환하게 웃으며 그의 등 뒤까지 한달음에 걸어가 셜록의 등을 껴안았다.
“서운하네, 안 기쁜가봐.”
“…난 오라고 한 기억이 없는데.”
“음, 보통 애인이 집에 혼자 있다고 말하면 그건 집으로 오라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영화에서도 그랬던 것 같고.”
“여전히 자신에게 좋은 것만 골라서 믿는군.”
“-뭐, 어쨌든 좋아…셜록, 얼굴 좀 보여줘.”
셜록은 기계적으로 얼굴을 돌려 모리아티를 바라보았다. 일부러 상대방의 신경을 긁으려는 듯 뻑뻑한 몸짓이었다. 그러나 셜록의 의도와는 달리, 모리아티는 그런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모리아티는 셜록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충만감에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존은 그런 모리아티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계까지 눈살을 찡그리고 있었다. 같은 남성이기에 알 수 있는, 명백한 성적 의도가 담긴 미소였다. 세상에, 시발, 설마 내가 산 소파에서 할 생각은 아니겠지. 아니나 다를까, 둘 사이의 간격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존은 모리아티의 얼굴이 천천히 셜록의 얼굴 위로 기우는 것을 보며 황급히 벽에서 얼굴을 떼어냈다. 절대로 보면 안되는 종류의 비밀을 봐 버린 낭패감이 온 몸 구석구석을 눅진하게 적셔가고 있었다. 존은 손바닥에 묻은 땀을 바지춤에 눌러 닦으며 눈을 감았다. 바닥이 사라지고 있는 것만 같은 짙은 현기증이 그의 몸을 아래로 묵직하게 눌러대고 있었다.
존이 다시금 숨을 가다듬으며 차라리 지금 끝내버리자, 라는 마음을 지팡이 삼아 겨우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방 건너편에서 오디오가 켜지는 기계음이 들렸다. 음악? 오, 정말 가지가지 하는군. 존이 목 끝까지 차오르는 욕지기를 억지로 씹어 삼키며 문고리를 돌리기 위해 막 문으로 다가섰을 때였다.
“그런데 자기, 지금 지루하지?”
“응.”
“나도 그래, 그러니 우리 클루나 하자.”
뭐? 내 집에서 한가하게 보드게임까지 하고 있으면 둘 다 총으로 쏴 버릴 거야.
“…보드게임을 말하는 거라면 널 죽여 버릴 거야.”
“그럴 리가, 지금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는 진짜 클루를 말하는 거야.”
짝.
박수소리가 들렸다. 존은 그와 동시에 문고리를 잡은 손을 멈추고 뒤로 물러섰다. 이해하기 힘든 전개였다. 존은 클루와 박수소리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에 대해 잠시 고민했다. 아니면, 혹시 셜록이 그의 뺨을 때렸나? 존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얼굴을 부비고 있던 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다행히 그에 대한 해답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윽고 계단을 올라오는 무수한 발소리가 들려왔던 것이었다. 제길. 존은 서둘러 옷장과 벽 사이의 틈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다행히 발소리는 존이 있는 방문 앞에서 그대로 꺾여 안쪽을 향했다. 발소리를 따라 긴 줄이 계단에 끌리는 소리, 비닐이 바스락 거리는 것 같은 소음들이 방 안쪽으로 끌려들어갔다. 존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조심스레 틈새에서 나와, 벽에 부드럽게 달라붙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모리아티와 셜록을 에워싸고 무언가를 방에 설치하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방 안을 작은 상영관으로 만들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오디오에서는 어느새 비발디의 사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비발디? 셜록의 취향이 비발디였나? 남자들은 북소리에 맞춰 일사분란하게 물건을 옮겼다. 존이 방 안을 들여다보는 구멍 위로도 몇 번인가 누군가의 정장 소매가 오르내렸다. 존은 이미 자신이 끼어들어야 했던, 그래서 자신이 멈춰야 했던 지점을 한참 지나버렸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자신이 타야 했던 열차는 한참 전에 역을 지나쳐버렸다.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어느덧 정리되고, 방 한 켠에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일렬로 늘어섰다. 그 중 한 명이 모리아티에게 팝콘이 가득 담긴 볼을 건넸다. 모리아티는 윗쪽에 있던 팝콘들 중 하나를 입 속에 던져 넣고 까드득 거리며 한참을 씹다가 손을 흔들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커튼을 치려는 듯, 건조한 손놀림이었다.
“됐어, 나가봐.”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들어온 것과 같이 매끄럽게 바깥으로 사라지고, 모리아티는 주머니에서 작은 리모컨을 꺼내 무심한 듯 화면을 켰다. 세 개의 화면이 동시에 켜지고 각각 어딘가의 장소를 보여주는 화면이 떠올랐을 때, 존은 간절하게 냉장고에 들어있을 맥주 한 캔을 그리워했다. 그 즈음 해서는 모든 것이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어졌다. 결국 뭘 하든 자신은 저 미친놈들이 미친 짓을 하는 걸 멈출 수 없을 텐데, 하고.
“내게 무슨 짓을 하는 거죠?”
스크린에서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실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몽롱한 목소리였다. 존은 그제 서야 낙엽처럼 벽에서 떨어져나가 침대로 떨어질 수 있었다. 내일 아침 즈음 되면 모리아티는 사라져 있을 테고, 셜록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그러면 그때는 그 얼굴을 마음껏 두들겨 패게 될 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적어도 지금은 미친놈 두 명을 동시에 상대할 기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존은 발끝부터 자신을 부드럽게 휘감아 오는 잠을 느끼며, 휴대폰을 들어 기계적으로 몇 문장을 적어 넣었다. 이번에는 전송을 누르는 걸 망설이지 않았다. 젠장, 셜록. 어서 내가 지금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말해봐. 답은 없었다. 오직 건너편 방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기계음만이 소리의 전부였다. 존은 자신이 어딘가로 떨어지고 있다고 느꼈다. 끝이 없는 구멍 속으로.
존은 셜록을 처음 만났던 그 날의 기억을 꿈으로 꾸었다. 꿈속의 자신은 셜록에게 무엇이든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다. 존은 그 말을 하고 있는 꿈속의 자신을 두들겨 팼다. 후련한 꿈이었다.
***
셜록은 모리아티가 건네주는 팝콘을 집어 먹으며 모니터를 흥미진진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셜록은 집중할 때 자신도 모르게 손을 얼굴에 가져다 대는 버릇이 있었는데, 셜록이 손을 올릴 때마다 모리아티의 입 꼬리 역시 올라가곤 했다. 마치 숙제를 내밀고 칭찬을 기대하는 아이 같은 태도였다. 셜록 역시 그가 은밀히 그것을 바란다는 것을 눈치 채고 있었기 때문에 (라고는 하지만 모리아티는 대부분 어떤 감정이든 노골적으로 얼굴에 드러나기 때문에 굳이 셜록이 아니라도 그가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부러 그와 무언가를 할 때에는 손의 위치에 신경을 쓰곤 했었다. 그러나 결국 영상의 마지막 부분에서, 셜록은 솔직하게 감탄했다.
“대단해.”
모리아티의 얼굴에 이윽고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셜록은 뒤늦게 자기답지 않은 실수를 했다는 걸 눈치 채고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마음에 들었어, 자기?”
“음, 저번의 영화보다는 확실히 이편이 나아. 그러나 이것도 너무 뻔해, 내 생각에 범인은…”
셜록이 막 자신의 추리를 시작하려고 했을 때였다. 영상이 꺼지고, 모든 소리가 사라진 후에도 어딘가에서 이질적인 기계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셜록의 핸드폰이었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그 동안의 분위기를 깨기에는 충분했다. 모리아티의 얼굴이 짜증스레 구겨졌다. 그는 이윽고 불쾌감을 감추려는 노력도 없이 팝콘을 집히는 대로 하나씩 던져대기 시작했다. 셜록은 모리아티가 팝콘을 열 한 개쯤 집어 던지는 동안에도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알림을 확인하고 있었다. 얼마 가지 않아 수북히 쌓여있던 알림들 중 한 개의 알림에 셜록의 눈길이 닿고, 핸드폰을 쳐다보던 셜록의 움직임이 소리 없이 굳었다. 모리아티는 그동안에도 여전히 기계적으로 팝콘을 던지며 벽난로 위의 해골 눈 속으로 팝콘을 쌓아가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
“…존이 나를 기필코 죽이겠다고 하는군. 느낌표를 세 개나 달아서.”
방안에 일순 긴장감이 돌았다. 어색할 정도로 짙은, 괴상한 침묵이었다. 셜록은 잠시 할 일을 잃은 것처럼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다, 일이 난감하게 됐다는 듯 곤란한 표정을 떠올리며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야, 날 두고 어딜 가려고?”
“…빨래를 안 걷었어. 사실 2주째 그랬지. 존의 인내심이 끊어질 때도 된 것 같군.”
모리아티는 그 말을 끝으로 방을 나서는 셜록의 등을 황망히 바라보며 팝콘을 벌어진 입 사이로 집어넣었다. 입장이야 어찌 되었든, 그들에게 있어서 셜록 만한 구경거리는 둘도 없었다.
" 그토록 긴 이야기 "
Mycroft Holmes X Sherlock Holmes
written by. 파묘(@pamuss44)
친애하는 셜록.
친애하는 나의 아우, 셜록. 너에게 내가 보내는 친애하는, 이라는 구절 따위 알 수도 없고 이해하기도 어렵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물론 네가 그렇게까지 똑똑하지는 못하단 사실 또한 알고 있지. 하지만 이 문제는 나로써도 알 수가 없다. 어째서 네게 친애하는, 이라는 구절을 허용해야 하는지, 나로써도 핏줄과 연과 정이라는 것은 생각해보고 정리해봐도 도저히 모르는 난제 중 하나다. 너라면 이 구절을 비웃으면서도 이해할 것이라 예상한다. 친애하는 나의 동생, 셜록.
사랑하는 나의 동생, 셜록.
이 편지는 네가 평생 받지 못할, 답하지 못할 긴 편지가 되겠지.
나는 그것을 후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는다.
그저, 언제나, 영원히 써내려 갈 것임을.
***
마이크로프트는 잡고 있던 우산의 손잡이를 쉼없이 만지작 거렸다. 어느새 땀이 배어든 손바닥은 조금이라도 힘을 푼다면 미끄러질 것이 분명했다. 마이크로프트는 기어코 버티고 서 있었다. 겨우 5분이었다. 5분을 기다리는 이 시간은, 쪼개고 쪼개져 더 많은 시간으로 이루어져 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만큼 그는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 무언가를 고통스럽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세명의 발자국 소리. 구두 소리의 둔탁하고 규칙적인 발걸음 두 개, 딸려들어오는, 허공을 헤매는 가벼운 발걸음 하나. 마이크로프트는 우산을 짚고 일어섰다. 부들부들 떨리는 관절 사이로 고통이 비어져 나왔다. 유달리 힘든 지탱이었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예상대로, 검은 정장을 입은 요원 둘과, 그 사이에 끼어있는, 꽤나 자유분방한 행색을 하고 있는, 나의 동생. 셜록. 마이크로프트의 눈썹 사이가 일그러졌다. 빠른 시야가 먼저 셜록을 살폈다. 널부러져 있는데다, 조금 뜯기기까지 한 낡은 천조각. 어디서 굴렀는 지 아직 지워지지 않은 진흙 자국과 머리카락에 엉겨있는 나뭇잎 조각까지. 마이크로프트는 잠시 눈을 감고 머리를 짚었다. 한숨과 함께 셜록의 실소가 들려오는 것 같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셜록의 두 손을 붙들어놓은 수갑에서부터 쇳소리가 들려온다. 거슬린다. 마이크로프트는 요원들을 바라보았다.
"셜록은 두고, 자네들은 나가있게."
요원들은 난감하다는 듯 잠시 서 있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얇아지는 눈매로 그들을 한번씩 훑어본 뒤, 고개를 문쪽으로 돌린다. 요원들은 어쩔 수 없이 셜록을 무릎꿇어 앉혀놓고는 문 밖으로 나섰다. 문이 닫히는 것을 보고 나서야 마이크로프트는 셜록에게 다가갔다. 체력이 다 한듯 무릎을 꿇고서도 그의 몸이 흔들거리는 것을 바라보며 마이크로프트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있는 힘껏 우산을 휘둘러 그에게 가격했다. 힘없이 옆으로 쓰러지는 셜록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마이크로프트는 눈을 깜빡이며 정신을 찾으려고 느리게 구르는 그의 몸, 가슴부근을 강하게 밟았다. 그에게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렀다. 마이크로프트는 그렇게 해서야, 고정된 자신의 동생을 내려다보았다.
"여느 사람들은 그러지. 집 나가면 고생이라고. 나의 동생. 셜록. 가출을 했으면 부모에게는 알리지 않아도, 이 형에게는 알려야 했어. 그렇지 않니?"
셜록은 그의 말에 힘없이 씨익 웃었다. 마이크로프트는 잠시 고통스러운 듯 두 눈을 감았다 떴다. 미간 사이의 주름은 더욱 깊어졌다.
"네가 멍청한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구나, 셜록."
"아니, 형은 알았어. 그래서 경고했던 거지. 우리같은 사람에겐 친구 따윈 없는 거라고."
"그 때, 내 충고를 듣고 떨어졌어야 했어, 셜록. 존 왓슨이 죽기 이전에 말이야."
셜록은 죽음,이라는 단어에 반응했다. 그리고 이어 정말 죽은 듯이 눈을 감는 셜록을, 마이크로프트는 바라보았다. 아직까지도 그의 몸을 짓밟은 발을 떼지 않았다. 다리뼈에서부터 흘러 들어오는 고통이 계속해서 감각을 일깨웠지만, 떼지 않았다. 마이크로프트는 이를 악물었다.
"셜록."
대답은 없었다. 침묵하는 그를 내려다보며 마이크로프트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를 고정시킬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사라지고, 더욱 세상을 헤매는 그를 보았다. 그를 고정시킬 수 있는 것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에, 그가 또 다시 울고 있다는 사실에 마이크로프트는 머리가 아팠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저릿한 통증이 일었다. 언제나처럼, 이해할 수 없는 통증이었다.
"어머니, 아버지께는 내가 따로 연락하마. 그동안, 푹 쉬고 있으렴."
조용한 그를 바라보다, 마이크로프트는 요원들이 사라진 문으로, 밖으로 나섰다. 문이 닫히자마자 들리는 비명소리에 마이크로프트는 잠시 멈춰섰다. 그리고, 다시 걸어갔다. 조금 더, 냉정해져야 했다. 그리고 좀 더 자신은 무뎌져야 했다. 예전보다. 더욱 더.
***
셜록. 너는 그 때를 기억하는 지 모르겠구나. 나의 영민함을 질투하던 그들이 나를 단체로 린치하던 그 날, 나를 바라보던 너를. 너를 바라보던 나를. 너는 아무 말없이 집을 나섰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땐 입가에 피딱지를 얹은 채였지. 다음날 학교에 들어섰을 때 들리는 건 무언가의 함정에 호되게 당한 그들의 소식이었다. 나라면 그정도 피딱지를 얹을 위험 가능성은 배제하고 좀 더 완벽한 계획을 짰을텐데. 너는 멍청해서인지 그런 위험성은 배제하질 않더구나. 그래서 더욱 걱정하고 있다. 너에 대해. 너는 네 한 몸 사릴 줄 모르는 멍청한 녀석이기에. 나는 너를 어떻게 제어하고, 어떻게 지켜내야 할 지, 도저히 모르겠다.
나의 동생 셜록. 언제나, 매일같이 이런 한구절 한구절, 너에게 편지를 쓴다. 이 편지는 종이가 아닌, 그보다 더 완벽한 나의 머리에 새겨질 문장들이다. 너를 인식하던 그 어릴 적부터 한장씩 써오던 것들을 나는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한문장도, 한 단어도 놓치지 않고있지. 하지만 너는 평생 읽지 못할, 수신없는 편지다. 내 머리를 가른다고 해도, 너에게 절대 보낼 수 없는 편지들. 나는, 보내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저 네가 살아가기만을 바란다. 오늘의 편지를 맺는다. 사랑하는 내 동생, 셜록.
언제나 너를 걱정하는 마이크로프트로부터.